정책돋보기
5화
탄소국경세,
위기일까 기회일까?
최근 해외 수출을 잘 이어오던 국내 기업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제품이 배출한 온실가스량에 따라 관세를 매기겠다는 글로벌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제품의 생산에 있어 탄소 저감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미국의 ‘청정경쟁법안(CCA)’입니다. 일명 ‘탄소국경세’라 불리는 이 제도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지금 어떤 단계에 있을까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가장 먼저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무역 규제를 도입한 곳은 EU(유럽연합)입니다. EU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강도 높은 정책들을 내놓으며 탄소중립을 향한 로드맵을 구체화해왔습니다. 2019년 12월에는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 계획’을 발표해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비전을 공식화했으며, 2021년 7월에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수의 실행계획을 담은 ‘Fit-for-55’ 를 발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며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 Fit-for-55 :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13개의 입법안 패키지
유럽 그린딜 및 후속 정책 추진 경과
-
2019년 12월
유럽 그린딜 발표
-
2020년 1월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 및 공정전환체계(Just Transition Mechanism) 발표
-
2021년 6월
유럽기후법(European Climate Law) 채택
-
2021년 7월
탄소 감축 입법안 패키지 ‘Fit-for-55’ 발표
-
2023년 5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입법안 제정 및 공식 발효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 및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EU 생산 제품에 부과된 탄소 비용에 상응하는 일종의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
-
C
Carbon
탄소
-
B
Border
국경
-
A
Adjustment
조정
-
M
Mechanism
메커니즘
현재 EU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U ETS) 를 통해 탄소 배출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실가스 규제가 없거나 느슨한 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해 EU로 수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EU에서 생산된 제품은 추가적인 탄소비용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오히려 탄소 집약적인 수입 제품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업들이 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약한 나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이른바 ‘탄소누출’ 현상도 발생할 수도 있죠. CBAM은 이러한 문제를 차단하고, EU 내 기업들의 그린전환 과정 속에서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ETS : 온실가스 다량 배출 사업장(또는 시설군)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정부가 나누어주고, 사업장은 할당된 양만큼만 배출하되, 사업의 결과 발생한 여분의 할당량과 부족한 할당량을 사업자 간에 거래할 수 있게 한 제도
EU에서 발생한 탄소누출
탄소배출 감축 규제가 강한 권역 내의 제조업 생산시설들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국가로 이전하는 현상
-
EU
생산시설 유출
-
그 외 국가
저렴한 제품 수입으로 EU 제품 경쟁력 약화
CBAM은 제품 생산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중 Scope 1(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직접 배출)과 Scope 2(외부에서 구매한 전기·열·스팀 사용으로 발생하는 간접배출)에 대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하며, 인증서의 가격은 EU ETS 시장가격과 연동됩니다. 현재는 전환기간(2023년 10월 ~ 2025년 12월)으로, 인증서 구매 의무는 유예 중입니다. 하지만 EU 수입업체는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비롯해 품목의 양이나 원산지에서 지불한 탄소 가격 등 정보를 보고해야 하며. 전환기간이 끝난 후에는 배출한 탄소의 양만큼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합니다.
<탄소규제 격차 해소를 위한 CBAM 적용 방식 >
- 규제에 의한
탄소비용
- 국내상품
- 교역상품
-
A국
온실가스 규제 시행
-
B국
온실가스 규제 미시행
CBAM
- 규제에 의한
탄소비용
- 조정에 의한
탄소비용
- 국내상품
- 교역상품
-
A국
온실가스 규제 시행
-
B국
온실가스 규제 미시행
현재 CBAM 적용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로 총 6개 품목입니다. 전환기간이 끝나는 2026년 1월부터는 인증서 구매를 포함한 본격적인 규제가 시행되며, 적용 대상과 범위가 확대될 수도 있는데요. 이는 단순히 EU 역내의 문제를 넘어, 무역으로 긴밀히 연결된 전 세계 산업구조와 수출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CBAM 적용 대상>
품목, 분야, 배출량(비중)
| 품목 |
분야 |
배출량(비중) |
| 철강 |
이산화탄소 |
직접 배출 |
| 알루미늄 |
이산화탄소, 과불화탄소 |
직접 배출 |
| 시멘트 |
이산화탄소 |
직접 배출+간접 배출 |
| 비료 |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
직접 배출+간접 배출 |
| 전력 |
이산화탄소 |
직접 배출+간접 배출 |
| 수소 |
이산화탄소 |
직접 배출 |
미국의 ‘청정경쟁법안(CCA)’
EU에 이어 미국도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고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명 미국판 CBAM으로 불리는 ‘청정경쟁법안(CCA, Clean Competition Act)’입니다. 이 법안에는 미국 산업 평균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과 자국 제품에 탄소 비용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즉, 탄소 감축 노력을 기울인 제조업체에는 경쟁력을 부여하고, 반대로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에는 부담을 안기겠다는 거죠.
청정경쟁법안(CCA)’란?
민주당 셀던 화이트하우스 상원 의원이 발의한 법안으로, 탄소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대해 1톤당 55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간 미국은 자국 제조업의 탄소 집약도를 낮추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정책적 노력을 투자해 왔습니다. 그 결과, 탄소 집약도는 세계 평균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아졌는데요. 하지만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국가 상당수는 여전히 높은 탄소 배출 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CCA 법안을 발의한 미국 상원은 당시 “미국의 제조업 탄소집약도는 세계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중국과 인도는 각각 3배, 4배에 이른다”며,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수입되는 고탄소 제품으로 자국 제조업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 CCA는 탄소 감축이라는 글로벌 책무를 산업 경쟁력으로 환산하려는 시도이자 미국 산업의 불균형을 교정하는 제도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현재 CCA는 2022년 6월 최초 발의 후 2023년 12월 재발의된 상태로, 대다수의 의원들이 지지를 표명하고 있어 입법화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법안이 본격 도입되면 화석연료,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등 NAICS 기준 26개의 에너지 집약산업에서 생산된 재화에 탄소세가 단계적으로 부과되는데요. 초기에는 원자재에 적용되며, 점차 전기·전자제품을 비롯해 자동차 등과 같은 완제품으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NAICS(북미 산업분류체계) : North American Industrial Classification System 석유 추출(211120), 천연가스 추출(211130) 등 26개 산업으로 구성
탄소세는 미국과 원산지의 탄소 집약도 격차, 탄소가격, 적용비율을 수출중량에 곱한 값에 의해 결정됩니다. 일례로 탄소 집약도 격차가 1, 탄소가격이 톤당 55달러, 적용비율 1일 때 한국 기업이 100톤을 미국에 수출할 경우 미국 수입업자는 5,500달러의 탄소세를 납부해야 합니다. 결국 수입업자는 한국 기업에 비용을 전가하게 되고, 국내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청정경쟁법 내 탄소세 관련 주요 내용>
출처 : [한국경제인협회] 미국 청정경쟁법CCA의 국내 파급효과 및 시사점 보고서
글로벌 무역제도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CBAM과 CCA는 기업들에게 부담과 비용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저탄소 기술 등의 도입으로 제품의 탄소 배출량을 저감한다면 무역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2023년 기준, 무역의존도 가 69.3%(수출 34.4%, 수입 34.9%)로 높은 편인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그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이 CBAM·CCA의 적용 대상이 되는 산업군에 속해 있는 만큼,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무역의존도 = GDP대비 수출입 비율
2021 ~ 2023년 한국 무역의존도
수출
수입
이를 위해서는 탄소 배출량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정밀하게 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의 배출량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수입 원자재나 제조 연료의 탄소 배출량 정보를 미리 확보•분석하고, 시장 변화에 맞춰 설비와 제품을 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와 함께 자체적으로 탄소중립 경영을 강화하고, R&D 투자 및 기술개발을 통해 공정 개선과 신기술 도입에 나서는 등 제품 생산 공정에서의 탄소 배출량 및 탄소 집약도 저감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 구조의 전환이나 탄소 저감 기술 확보 등은 단기간에 달성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노력이 모두 중요합니다.
기후위기 시대,
CBAM과 CCA와 같은 무역 패러다임은 단순한 위기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내 산업 구조를 친환경 중심으로 재편하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장 질서에 맞는 우리만의 전략을 세울 때입니다.